작성일 : 09-02-14 15:53
주린자는 복이 있나니(1)
 글쓴이 : 신재형
조회 : 4,310  
'성찬'에 대한 <피터J.레이하르트>라는 신학자요, 목회자의 글입니다.
이번 주부터 31주에 걸쳐 매주 한편씩 '성찬'에 대한 말씀 묵상 글을 소개할까 합니다.
이 글을 통해 성찬에 대한 깊은 이해를 우리 모두 경험했으면 좋겠습니다.

<저자 서문>

    개신교 신자들은 스스로 카톨릭 신자들보다 주님의 성찬에 대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종교개혁이 말씀과 말씀에 대한 설교를 다른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가르쳤다고 보기 때문이
다. 그래서 주님의 성찬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개신교도가 있따면, 그가 "종교개혁에 역행하는" 위험에 빠지기 쉬우며, "로마 카톨릭으로 가는 첩경"에 접어들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실은 그 반대다. 중세 후반의 평신도들은 미사에서 거의 떡을 받지 못했다. 그들은 사제들이 떡과 포도주를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진시키고 피 흘리지 않는 희생제사를 제공할 때, 비교적 안전한 거리에서 그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성별된 성체(聖體)들이 큰 대로를 관통해 행진할 때, 사람들은 그것을 응시하며 받들었을 뿐 결코 먹을 수는 없었다. 피는 마술적인 요소로 생각되었고, 피의 기적은 15세기의 사람들에게 매우 일상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평신도들은 예수님이 "나의 피 곧 새 언약의 피"라고 불렀던 그 포도주를 결코 마시지 못하였다.

    그런데 종교개혁이 이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루터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제사장이며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실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루터를 추종하는 종교개혁의 후예들은 주님의 성찬을 주님의 백성들에게 되돌리기 위해 힘썼다. 칼빈 역시 기독교인이라면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씩" 그분의 성찬을 축하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신교 역사의 비극 중 하나는 바로 이러한 가르침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개신교도들은 오래 전 언제부터인가 주님의 성찬을 회피하기 시작했다. 이는 분명 종교개혁의 가르침에 역행하는 것이다. 로마 카톨릭은 성찬의 식탁을 무덤과 같이 만들었다. 그들은 성찬의 기쁨보다는 오히려 두려움으로 미사에 접근하게 했으며, 주님의 성찬 또한 매우 드물게 행했다. 그런데 오늘날 개신교 역시 카톨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님은 새 성전 곧 교회 안에서 떡과 포도주의 잔치를 베푸신다. 그리고 먹고 마시도록 우리를 초청하신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신교도들은 이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우리는 배고프지 않다"고 대답하는 형국이다.

    배고픔은 인간의 실존이다. 성경은 많은 경우에 하나님의 선물을 주린 자들을 위한 음식과 관련해 표현한다. 하나님은 에덴동산 안에 각종 푸른 나무를 제공해 주셨고(창2:16), 또 장차 새 예루살렘 안에서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베푸실 것이다(계19:9). 이처럼 성경은 식사와 더불어 시작해서, 식사와 함께 끝난다. 그 시작과 끝 사이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음식의 형태를 취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더불어 식사를 나누시며(창18:1-8), 유월절을 축하하도록 명하신다(출12장). 하나님은 광야에서 만나와 물을 공급해 주시며(출16:1-12; 고전10:1-4), 젖과 꿀이 흘러넘치는 땅을 주신다. 하나님은 먹고, 마시며, 즐거움이 넘치는 부요한 왕국을 다스리도록 솔로몬을 세우시며(왕상4:20), 엘리야와 엘리사에게 기적의 떡을 공급해 주신다(왕상17:1-16; 왕하4:38-44).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도록 보내시며, 최종적으로 우리의 음식과 음료로 제공해 주신다.

    주님의 성찬을 축하할 때, 우리는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할 뿐 아니라 장래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바라본다. 과거와 미래가 현재의 주님의 상(床)에서 결합된다. 우리가 한 덩이의 떡을 먹을 때, 우리는 서로 한 몸을 이루게 된다. 우리는 죄인들을 초청해 함께 먹고, 주님은 그 나라의 좋은 소식을 전하도록 자신의 식탁 밖으로 우리를 보내신다. 이로써 안과 밖이 주님의 성찬에서 화해한다. 주님의 성찬은 과거를 돌아보며 미래를 소망한다. 주님의 성찬은 밖에 있는 사람들을 안으로 초청하며, 안에 있는 사람들을 밖으로 파송한다. 주님의 성찬은 새로운 세상과 시간이며, 공간의 중심이요, 그것은 곧 교회이다.

    주님께서 자신의 음식과 음료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을 일깨우는 데 이 책을 사용하시길 기도한다. 배고픔은 인간의 조건이며, 또한 복을 받는 조건이기도 하다. 우린 가장 높은 곳에 계신 권위에 우리의 배고픔을 호소해야 할 것이다. "주린 자와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