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02-15 09:03
누구의 목에 연자맷돌을 매달아야 하나?
 글쓴이 : 임마누엘
조회 : 15,482  
연자맷돌에 관한 기사는 마18장과 눅17장에 기록되어 있다. 그럼 먼저 두 본문을 가단하게 풀어보자.

마18:1-14(6-10)
1-4절 : 천국에서 누가 크냐? -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 이가
5절 : 이런 어린아이를 영접 - 곧 예수님을 영접, 어린아이가 누구? - 영접의 의미를 볼 때
6절 :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달아 깊은 바다에 빠트려라!
7절 : 하지만 그렇게 하는 자에게 심판이 주어짐
8-9절 : 실족케 하지 않을 대안들, 실족당하는 자에게 대한 경고의 말씀이기도 함.
10절 : 소자를 업신여기지 말아야 할 이유
12-14절: 소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마음) (12-14)

눅17:1~10
1절 : 예수님 말씀하시는 형제를 실족케 하는 죄
2절 : 연자 맷돌을 목에 매어 바다에 던지우라
3-4절: 그것을 위해 용서를 언급(불가능한 용서) - 하루 일곱 번이라도!
5절 : 사도들이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라는 요구 - 도무지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을 알았었기에
: 연자 맷돌을 목에 매어 바다에 던져야 됨
6절 :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
예수님은 믿음의 양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질적인 언급을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믿음의 크고 작고, 좋고 나쁘고, 깊고 얕다는 표현하디고 하지만
믿음 자체를 놓고 볼 때 믿음은 곧 구원에 이르게 한다.
구원을 얻는 유일한 길은 믿음이다. 잘 믿어라? 깊이 믿어라? 크게 믿어라? 하지 않는다.

- 부끄러운 구원이 있는가? - 없다.  예수님의 오른편 강도 - 부끄러운 구원?
- 우리 입장에서는 부끄럽다는 표현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권사, 집사, 또 교회 안에서 많은 일, 대단한 일을 하면
  하나님 앞에서 떳떳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7-10절 : 그리고 이어서 종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이 종에 대한 비유는 위의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에 대한 구체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 종으로서 당연히 할 일을 했다는 것이다.
- 교회 안에서 철저히 공로사상을 배제하는 말씀.
어떠한 조그만 것도 우리의 노력으로 이루었다 할 수 없다.
 
철저히 주님께서 하시는 것이고 우리는 무익한 종이고
그 종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는 고백을 하며 살라는 말씀이다.

오늘 알아보고자 하는 것은 누구 목에 연자 맷돌을 매다는가 하는 질문이다.
1. 실족시키는 사람의 목에 매단다는 뜻

작은 자 중 하나,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는 잘못을 저지를 찐대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빠져 죽으라는 뜻이다.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것은 자신이 연자 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빠질 각오를 하고,
죽을 각오를 하고 죄와 싸우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2. 실족당하는 사람의 목에 매단다는 뜻

작은 자 중 하나, 소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할 밖에야
차라리 그 사람의 목에 연자 맷돌을 매달아 바다 빠트려 죽여 버려라 라는 뜻이다.
남을 실족케 하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은 흉악하고 큰 죄가 된다는 의미다.

이 본문을 가지고 겸손에 대한 해석을 많이 내린다.
물론 겸손해야 한다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오병이어의 역사를 적은 것으로 많이 만들었다고 보는 정도다.

또한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인간관계를 잘해야 한다는 해석도 많이 한다.
그래서 어떤 때는 내가 손해가 되고 억울하고 힘들어도
상대방이 실족할까봐 참고 조심하고 양보해야 한다고 해석한다.
물론 성도들에게 그러한 교훈을 주는 말씀이 될 수 도 있다.

그런데 어떤가?
이 말씀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와 연결되어야 마땅하다.

하나님의 말씀, 구원에 이르게 하는 말씀을 읽어놓고 그것을 인간관계를 잘하는 방법으로,
세상사는 지혜 정도로 이해해버린다면 그것이 장로의 유전이 될 수도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1. 실족하게 하는 사람의 목에  연자 맷돌을 맨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누구 목에 맷돌을 매다느냐는 문제를 마18장에 의하면 전후 문맥을 살펴서 답해보자.
 
네 손이 범죄케 하면 네 손을 베어버리는 것이 낫다
네 발이 범죄케 하면 네 발을 베어버리는 것이 낫다
네 눈이 범죄케 하면 차라리 눈을 빼어 버리는 게 낫다

이 말씀에 연유해서 남을 실족케 하느니 네 목에 연자 맷돌을 매고
바다에 몸을 던지는 것이 낫다로 해석할 수 있다.

2. 실족당하는 사람의 목에  연자 맷돌을 맨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마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 to be drowned in the depth of the sea. (빠뜨리우는)

(눅17:2) 저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매이우고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나으리라 - to be thrown into the sea. (던지우고, 던지움이)

본문의 동사 달리우고, 빠뜨리고, 던지우고 이런 동사는 사동이고 피동인 동사다.

즉, 남의 움직임에 의해 동작을 나타내는 것들인데
이렇게 보면 맷돌을 목에 달고 물에 빠질 자는 실족케 한 자가 아니고 실족당한 자라고 볼 수 있다.

(마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마16:23)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마17:27)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자 이제 결론을 내려보자.

(마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눅17:2) 저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매이우고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나으리라

실족케 하는 자와 실족함을 당하는 자가 등장한다. 그러면 먼저 실족을 당하는 자가 누구인가?
누가복음에서는 “작은 자 중 하나”라고 되어있지만
마태복음에서는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라고 되어있다.
그러니 본문에 등장하는 소자, 작은 자는 - 믿음이 적은 자, 믿음이 약한 자를 뜻한다.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약한 성도들 중 하나를 뜻한다.

본문의 "차라리(It would be better~)"라는 표현은 그 사람을 실족시킬 바에는
오히려 그 사람의 목에 연자 맷돌을 매서 바다에 빠져 죽게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실족케 하느니 차라리 죽여라!”는 뜻이 된다.
- 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 그 사람과의 인관관계가 나빠져 상심하게 하느니
  “차라리 죽여 버려라!”는 의미겠는가?
- 단순히 너와 나의 관계에 대한 말씀이겠는가? 그럼 이 사람은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안 그래도 믿음이 약해 겨우겨우 신앙생활하고 있는데
이런 저런 말과 행동으로, 일로 나를 실족시켜 놓고 그것도 모자라서 죽여 버리라니!!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어 보이는 내용의 말씀이 아닌가?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면 실족 시키는 사람을 죽여 버린다!
혹은 실족될 만한 일을 만나더라도 잘 참고 견디어라!
그러면 내가 몇 배로 갚아주고 그 아픔과 괴로움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바꿔 주겠다!

뭐 이래야 하나님 다워 보이고, 하나님의 말씀 같지 않은가?
우리는 이제 이러한 표현에 잘 적응하는 귀를 가졌다. 절대 그럴 리는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 말씀 속에는 억울한 것 풀어주는 것 정도의 축복,
억울하게 만들면 죽인다 정도의 차원보다도 훨씬 높은 차원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
 
그냥 세상살이에서 억울하다, 실족했다, 억울하게 했다, 실족시켰다 정도가 아니다.
비록 그 육은 죽일지라도 “영혼은 구원 받게 하는 것이 낫다”라는 의미다.

(마10:28)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실족하여 믿음 생활을 떠나 구원을 놓치게 할 바에는
차라리 그 적은 믿음이라도 지닌 채 바다에 빠져 죽는 게
그의 육체는 어쩔 수 없이 죽더라도 그의 영혼 구원만은 놓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하나님의 구속적 사랑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실족케 하여 믿음을 떠나고 교회를 떠나 구원을 잃게 하는 것은 큰 죄가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남을 실족케 하는 자에게 내려질 형벌이 있음을 말씀한다.

(눅17:1)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케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있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하지만 실족하는 자도 죄 없다 하지 않으신다.

(막9:47-49)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얼핏 보면 본문이 실족케 하는 사람의 목에 연자 맷돌을 다는 것이나
실족케 할 밖에야 차라리 그 사람의 목에 연자 맷돌을 달아라는 것이나 그 의미는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풀어놓고 보니 엄청나게 다른 의미가 담겨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 시대의 연자 맷돌은 그냥 앉아서 돌리는 조그만 것이 아니라
나귀가 끌어서 돌리는 아주 큰 것인데 주로 올리브기름을 짜는데 사용하였다.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연자 맷돌의 의미는 단순히 인생살이에 서로와의 인간관계에서
사람을 실족케 하는 정도의 의미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분명하고 마땅하지만
그것만을 본다면 그것은 부족한 것이요, 어떤 면에서 잘못될 가능성이 많다.

우리에게 그와 같이 강조하시면서 제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시는
절대로 너희들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시는 우리의 구원을 향하신 예수님의 말씀이다.

연자 맷돌을 목에 달아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나 용서하는 것들이 다 중요하지만 우리로서는 불가능하다.
용서에 대해서도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고 말씀을 시작하시면서 먼저 주의를 주고 있다.
하지만 결국 우리로서는 불가능한 것이고 그래서 제자들은 믿음을 더해달라고 요구했고
예수님께서는 겨자씨 한 알을 말씀하셨다.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겨자씨 한 알 같지만 구원에 이르게 한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다”는 것을 강조한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없으면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일으키지 못하시는가?
그러니 이 말씀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결국에 구원의 자리에까지 인도하시고자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내용이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많은 사람을 먹이는 것 정도,
적은 것으로 많을 것을 만들어 내는 놀라운 기적 정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셔서 그 교회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역사를 이루어 가고
그 교회 속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통하여
이 땅에서도 천국의 신령한 떡과 음료를 공급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여 그 믿음을 잃게 하는 범죄적 행동을 금지하는 것과
영혼 구원이 더 소중하다는 주님의 구속사적 의지가 담긴 말씀이다.

연자 맷돌을 볼 때 마다 구원역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되지 않도록 목숨을 걸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 대신에, 우리 대신에 친히 연자 맷돌을 목에 매시고
나의 구원을 위하여 죄와 사망과 지옥의 바다에 빠져 죽으셨다.
아니 그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십자가를 목에 걸고 바다에 빠져 죽으셨다.
그로 인해 그 바다(이방, 오늘날 우리)가 구원의 백성으로 귀속된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연자 맷돌을 목에 매고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끊임없이 그 연자맷돌을 돌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